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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마크투비 2022. 9. 6. 15:27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

 

 

02 이상화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요즘 여러 권을 쌓아두고 읽어서 어디에서 본 말인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대부분 하는 말이 비슷하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결국 상대에 대한 무지함 때문이다. 각자의 소망을 상대에게 투영시켜 상대방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이럴 것이다~하고 원하는 것을 이상화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06 마르크스 주의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 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서양 사상의 오래되고 우울한 전통은 사랑은 본질적으로 보답받을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다가도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으면 괜히 상대방 매력이 반감되는 경우가 있다. 꼭 자존감이 낮고 뭔가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않는데, 이런 나를 좋아한다고? 너도 그것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공감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나를 알아본 상대방을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유는 책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자기 혐오보다는 자기 사랑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저런 사고가 결국 자기 사랑이 충분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 사랑이 자기 혐오보다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된다고 한다.

 

10 사랑을 말하기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감정을 마시멜로 같다고 느꼈는데, 그게 뭔지 알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았다.

 

14 “나”의 확인 💟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봐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파트가 가장 와닿았다. 내가 바라는 연애, 내가 생각하는 "그럼에도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14장에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많은 것을 닮게 된다. 그리고 또 상대방에 의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제 3자를 통해 인식하게 된다.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기도 한다.

 

책에 따르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혼자서는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이 온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근처에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역할을 연인에게 기대하게 된다.

 

의미론적으로 볼 때 사랑과 관심이 거의 맞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관심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사소한 취향을 알게 되고, 내가 보는 상대의 모습을 알려주고, 일상과 습관을 기억하고, 이 모든 것에는 다양한 “나”의 확인이 포함된다. 사람들은 평생을 걸쳐 나 자신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중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찐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다양한 “나”의 확인이 되기 때문에. 사랑과 연애는 곧 다른 대상을 통해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5 마음의 동요 💡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이성에 따른 삶을 옹호하고 이성의 이름으로 욕망에 의한 삶을 비난해왔다면, 그것은 이성이 지속성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자와 철학자 중에 누가 사랑을 더 ‘잘’ 할까? 사랑을 더 잘 한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최근 읽고 있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사랑을 더 잘 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마 철학자일 것이다.

 

반대로 생각했을 때 이는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과 연애를 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은 자신의 안정된 정체성을 보장받길 원하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이성을 만나게 되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일관된 답을 얻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닌 이성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어떤 연애를 하고자 하는지,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는 다를 수 있지만 한 사람과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로맨티스트보다는 진지한 철학자가 낫다는 얘기이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들처럼 스토리 중심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인문학st 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소설 속 스토리는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에 몰입하며 읽어서 그런지 후반부 읽을 때쯤엔 머리가 너무 아팠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냥’이다. 그래서 나도 항상 ‘그 사람이 왜 좋아?’ ‘그 연예인이 왜 좋아?’ 이런 류의 질문을 들으면 ‘이유는 없다, 근데 그 사람의 좋은 점은 있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작가도 사랑을 그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런 외모 혹은 저런 성격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즘 나의 관심사 중 하나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 비스무레한 것을 찾기 위해 사랑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해 꽤나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사랑이 불합리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불가피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의 기술>이 계속 떠올랐는데,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사랑'에 관한 인문학 에세이이다. 사랑을 글로 배울 수 있나? 배울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 역시 기술이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을 노력 없이 그저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이라고 생각하면 실패에 도달한다.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계속적인 과정이며 끊임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진지하게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 추천합니다 🥰